친구와 길을 가던 갑은 옷가게 쇼윈도우 마네킹에 걸려 있는 옷이 눈에 들어와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가격표에 20만원이라고 붙어 있었고 이 정도면 약간의 흥정으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의 허락을 받아 그 옷을 입어 보았습니다. 갑이 마음에 든다고 하자 점원은 그 옷을 포장하여 주었습니다. 이 때 갑이 가격을 묻자 점원은 20만원이라고 대답하였고 갑은 이에 대해 18만원에 팔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점원이 거절하자 갑은 그럼 살 수 없다고 하면서 그냥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을은 이미 산다고 하여 포장을 했기 때문에 계산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경우 계약이 성립한 것일까요?
계약은 일반적으로 청약과 승낙에 의해 성립합니다.
청약이란 승낙과 결합하여 일정한 내용의 계약을 성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사표시이고, 승낙은 계약을 성립시킬 목적으로 청약에 대해 하는 의사표시입니다.
청약은 효력을 발휘한 때에는 철회하지 못하고, 승낙의 내용은 청약의 내용과 같아야 하며, 승낙기간 내에 행해져야 합니다.
청약과 승낙에 의해 계약이 성립하는 외에도 다른 과정에 의해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이 을에게 책 1권을 1만원에 사라고 하고 을이 이에 대해 승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갑의 을에 대한 청약과 동시에 을도 갑에게 책 1권을 1만원에 팔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청약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는 아니지만 그 내용이 일치하고 있으므로 계약의 성립을 부정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 민법은 갑과 을의 두 개의 청약이 상대방에게 도달했을 때 계약이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교차청약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때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으나,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이른바 요식계약)를 제외하고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의하여 계약서가 계약성립의 요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약서는 사후에 당사자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증거로서의 기능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사례는 계약의 성립시기에 관한 것으로 청약과 승낙, 그리고 청약의 유인에 대해 검토하여야 합니다.
청약과 승낙의 의사표시는 상대방에게 도달하여야 그 효력이 생기고, 청약의 의사표시와 승낙의 의사표시의 합치가 있을 때 계약이 성립합니다.
한편, 청약의 유인은 청약과는 달리 합의를 구성하는 확정적인 의사표시가 아니라 단순히 계약의 체결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표시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청약을 해올 것을 촉구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피유인자가 그에 대응하여 의사표시를 하더라도 계약은 성립하지 않고, 다시 유인한 자가 승낙의 의사표시를 하여야 계약이 성립하게 됩니다.
위 사례에서, 어떠한 의사표시를 청약과 승낙의 의사표시로 볼 것인가가 계약성립 여부의 관건이 됩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찰가격이 붙은 상품의 진열행위를 청약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청약의 유인으로 볼 것인가가 문제됩니다.
다수설은 정찰가격이 붙은 상품의 진열행위를 청약으로 보는데, 이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위 사례의 경우에 갑이 그 청약에 대해 승낙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갑은 흥정을 통해 가격을 깍으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고 20만원에 사겠다고 승낙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갑의 행위는 청약에 대한 승낙으로 볼 수 없으므로 위 계약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갑은 그 어떤 계약상의 의무도 부담하지 않습니다.
법무법인 정(正) 대표변호사 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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